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 경기를 치루고 인공지능이 큰 화두가 되었다. 뒤이어 로봇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앞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많이 대체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이후에 RPA를 통해 많이 부분이 자동화되고 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지금도 딥러닝과 AI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되고 기술도 많이 발전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자연어 처리에서부터 이미지, 음성 인식까지 AI기술은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해 온 것 같다.

 

 

로봇의 부상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2017년 8월 16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내용을 조금 정리해보기로 했다. '로봇의 부상'의 미국 출판일은 15년 9월3일이다. 우리나라는 16년 3월 초판을  인쇄했다. 출판 당시에 이 책을 읽었다면 미래를 내다보는 이야기에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문이나 뉴스 등 언론을 통해 AI에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놀랍다기보다 어디에서 본 듯한 내용이 많다고 느껴졌다. 아마 언론상에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도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 책을 보면서 재미있던 부분 중 하나는 미국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황에 굉장히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이후, 생산성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 교육 수준은 올라갔지만 그에 걸맞는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  개인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기업의 이익은 증가하고 있다는 점 등 우리나라 경제가 미국의 경제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냥 한국 경제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로봇의 부상 원서(페이퍼백)

 

 

이 책은 기술의 발전이 노동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기술 혁명은 그와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각 분야별 변화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 방안들을 검토해 본다.

 

과거 산업혁명 시기에도 지금과 같이 기계와 자동화가 인간을 대처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경고의 메시지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러다이트 운동도 1811년과 1812년 사이에 일어난 운동으로 17세기 후반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에 발생한 운동이라고 하니, 이러한 문제 인식은 꽤 초기에 생겼던 것 같다.

 

그러나 산업혁명 시기의 자동화는 제조업의 인력들이 서비스업으로 옮겨 가면서 일자리를 모두 앗아갈 것이라는 불행한 일은 기우에 그쳤다.

 


그러나 지금 연구되고 있는 AI의 기술은 제조업, 서비스업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사람을 대체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 파장이 클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생명공학, 3D 프린팅 등 또 다른 기술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암울한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의료 등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혜택이 가야 되는 분야들은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이 올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를 잘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앞으로 로봇들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속도의 문제일 뿐 이를 크게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일자리를 로봇들이 대체해 나갈 때, 실직한 사람들의 소비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염려한다. 소득이 줄어드니 소비가 줄어들고, 이는 다시 기업의 생산 감소 및 비용 감축을 유발시켜 실직자 및 소득 수준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경제 위기 이후,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소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과거 자료를 근거로 내세운다.

 

 

실직

 

 

그러면서 기초 소득 보장제라는 것을 준비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기초 소득 보장제는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정 소득을 지급해주는 제도이다. 물론 일을 하고 더 높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꺽어서는 안 되는 수준에서 지급되어야 하며, 지급조건이나 자금의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해야겠지만  충분한 일자리가 제공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고성장의 시기를 지나면서, 잘 살고 못 사느냐는 개인의 책임으로 생각되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 구조 및 시스템상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과거에도 모두가 사다리를 올라가 잘 살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가 상당히 줄어들고 가는 길이 어려워졌다. 다양성의 사회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올라갈 수 없는 사다리로 고통을 받느니 자신의 만족을 채울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어느 분야을 막론하고 생산성은 인간의 능력과 상관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하는지 더 고민하게 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